[인터뷰] “가락시장에 디지털 그린뉴딜 꿈 꿔요”

2021년 10월 13일

“힘들어요, 정말 어려워요.”

귀를 의심케 하는 그의 첫 마디였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2020년 아시아 글로벌 리더 300인’ 중 ‘한국 스타트업 CEO 21’인에 이름을 올린 청년 리더 아닌가. 농산물 도매시장 식자재 직거래 주문 플랫폼 푸드팡(주)의 공경율 대표다.

공 대표가 서울 가락시장으로 진입한 것은 2019년 1월 1일. 창업 1년 후 국내 최대 시장인 가락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푸드팡으로부터 식자재를 배달받는 식당은 현재 2000개, 매달 100개씩 회원 수가 늘어날 만큼 폭발적인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스타트업 대표가 무엇 때문에 힘든 걸까. 지난 세밑 만난 공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고객(식당)에게 다양하고 신선한 식자재를 공급하기 위해 거래방식의 다양화가 필요한데 카르텔이 극심한 가락시장은 마치 거대한 벽이 가로막혀 있는 것 같아요. 농식품부뿐 아니라 중소벤처부, 해수부, 과기부도 관심을 가져주었음 해요.”

-왜 힘든가.

아이티 전공이라 중소벤처부 쪽 창업을 하면 지원도 정말 많은데 농업분야라 그런지 관심이 덜한 것 같다. 규제랄까…? 규제보다 먼저 카르텔이 강력한 시장인데다 보수적인 분위기가 있다. 혁신적인 생각과 행동은 경계하고 ‘잘 되겠어?’ 하는 분위기. 그래서 힘들다. 가능성 믿어주고 도움 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부족하다.

-가장 필요한 지원은 무엇인가.

푸드팡 하는 일이 식당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거라 전국 도매시장에 기반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서울, 부산만 하고 있다. 도매시장이 경쟁력이 있어야 푸드팡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고객이 원하는 품위와 구색을 맞추려면 도매시장 내 농산물 거래제도가 다양해져야 한다. ‘이 식당이 요구하는 품위로 담아주세요’ 하면 담아주는 제도 말이다. 가락시장에 예외적으로 중도매인 직거래제도(정가수의매매제도)가 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시장도매인제 도입이 절실하다. 그런데 간담회나 토론회를 보면 너무 큰 벽에 가로막혀 있는 느낌이 든다. 2000년에 법이 개정되고 도입이 허용됐는데 아직까지 안 바뀐 거면 너무 큰 벽이지 않나.

-지금의 경매제로는 경쟁력이 없다는 말인가.

대기업의 구매 형태를 보면 해답이 있다고 본다. 도매시장의 중간도매상에게 경매를 통해 물건을 공급받지 않고, 대부분 산지 수집, 직거래로 물건을 받는다.

왜냐면 일단 경매 대가로 붙이는 상장수수료가 비싸다. 부산 등 대부분 도매시장은 7%인데, 물류비까지 10%를 붙이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중도매인도 5~15%의 마진을 받는다. 그래서 소비자가격이 비싸지고…. 고객이 원하는 품목을 골고루 가져다줘야 하는데 경매제에선 어떤 물건인지 모르고 사게 되고 이게 또 경쟁이다보니 원하는 품목을 못 살 때도 있다. 경매제가 내세우는 장점이 ‘공정성’이라지만 가만히 보면 경매 없이 가격을 정하기도 하고 경매를 안 부치는 물건도 있더라.

단편적으로 수요가 부족하면 공급가격이 올라가고 그러면 농가 수취가가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중간에 왜곡되는 걸 목격한다. 좋은 물건은 일부 중도매인이 먼저 빼가고 이 사람이 샀는데 다른 사람한테 넘기기도 하고, 그래서 공정한 경매가 아니다. 주식 거래처럼 금융감독원이 통제하고 한번 거래된 건 다시 정식절차를 통해 사고팔고 하는 게 없다. 결국 도매시장의 현행 거래제도인 경매제가 많이 왜곡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그 피해는 유통업체와 농가들, 소비자들에게 전가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젊은이가 도매시장에서 창업한 계기는.

가족이 유통업을 35년 동안 했다. 저 자신도 중도매인도 해보고 대기업에 납품도 했다. 대기업엔 보름동안 고정된 가격에 납품해야 했다. 그렇다고 가격을 잘 주는 것도 아니어서 도매시장 경매로는 가격을 맞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꾸 싼 걸 찾아다니고, 농가와 직접 거래를 하게 되면서는 시세가 쌀 때만 도매시장을 찾게 되더라. 이런 악순환들, 싸게 사야 되고 값을 안 쳐 주게 되고, 그러면 농가들은 좋은 물건을 아예 안 보내주고…. 그래서 물건이 서울로 몰린다. 서울은 지방보다 사정이 낫다.

대기업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게 식당이더라. 5개 대기업의 식자재 식당 공급 비율이 6%밖에 안 된다. 1톤 차 갖고 시작했다. 어플도 만들고 영업도 했다. 대기업은 외부에 물류창고가 있지만 저는 도매시장이 최적의 물류창고라고 봤다. 모든 품목이 있고, 모바일만 붙이면 최고의 효율이 나겠다 싶었다. 가장 힘든 부분이 거래제도이긴 하지만.

-그린뉴딜, 프로토콜 경제, 요즘 많이 나오는 이야기다.

디지털 그린뉴딜 사업이 도매시장에 꼭 필요하다. 과기부와 중소벤처부에서 이런 점을 관심 있게 봐 주면 경매제가 좋은지 시장도매인제가 좋은지 정보가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다. 박영선 중소벤처부 장관이 ‘프로토콜 경제’를 강조하신다. 플랫폼 경제의 독과점 문제를 보완하는 ‘참여형 공정경제 시스템’이라고 설명하시는데 저는 매우 동의한다.

도매시장은 중간 유통업체들의 수집과 분산의 과정이 너무 많다. 산지에서 물건 들어오면 공판장에 물건이 쌓이고 이 물건을 중도매인이 낙찰받으면 하역반이 중도매인 점포로 가져다주고, 또 중도매인이 상점들한테 실어주고. 디지털 시대에 손 한 번 덜 가게끔 만들어주는 그린뉴딜 사업이 도매시장에 필요하다.

박영선 중소벤처부 장관은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프로토콜 경제’에 대해 모든 참여자들이 합의된 프로토콜(규칙)을 만들고 그것에 따라 성과를 배분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예를 들어 배달의민족 등 플랫폼경제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갈등을, 모두가 투명하게 볼 수 있는 과정을 만들어 낮출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채택해 해결할 수 있다.(기자 말)

-푸드팡의 식자재 공급 과정이 궁금하다.

밤 11시에 식당(회원사) 주문을 마감하고 11시 10분에 중도매인들에게 발주한다. 중도매인들은 지정된 장소로 물건을 가져와 식당 주문별로 분류해 1톤차로 배송한다. 식당은 당일 장사에 필요한 야채, 고기, 수산물 등을 단 한 번에 받을 수 있다.

다만 불편한 건, 가락시장·강서시장 등 시장안에 물건을 분류할 지정장소가 없다는 점이다. 그날그날 비는 공간을 찾아야 하니 불편하다. 앞으로 전처리 공간을 확보하는 데 노력할 것이다.

-2021년 중요한 일은.

푸드팡이 ‘빅데이터 플랫폼 및 센터 구축 사업’의 농식품 분야 주관기관으로 선정됐다. 빅데이터 센터 구축 작업을 통해 고객의 주문부터 포장, 배송, 수령까지 모든 식자재 유통 단계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는 일에 집중할 계획이다.

빅데이터 센터는 aT의 ’농식품 빅데이터 플랫폼‘과 연계해 농식품 판매량, 시세변동 정보, 도매시장 납품.유통 정보 등 데이터를 제공할 예정이다. 농식품 유통의 데이터화를 아이티기업이 아닌 유통 당사자가 직접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가락시장 이몰(E-Mall)을 입찰받은 이유도 도매시장 내 유일한 온라인 시장을 아이티기업이 아닌 우리(유통인)가 제대로 활성화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다.

유통의 전 과정을 펼쳐보고 싶다. 단순히 경매제가 싸다, 시장도매인이 싸다가 아니라 산지에 얼마가 가고 어디에 얼마가 가는지 정보가 담겨야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데이터화 작업을 통해 통계와 수치가 나오면 불필요한 논쟁이 사라질 것이다.